때로 돌아 가게도 하시는 하니님의 계획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당신이 꼭 필요한 뭔가를 잃어 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면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지만, 당신이 엉뚱한 곳에서 찾도록 내버려 두고 계십니다.

나는 내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의 신판을 준비하던 중, 이에 사용할 인용 문구가 필요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리차드 범브란트의 책에서 읽은 적 있는 어떤 문구를 인용하고자 했습니다. 그 문구는 그의 묵상 서적, 높은 곳을 향하여(Reaching Toward the Heights) 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주 보는 페이지의 오른 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용할 문구를 찾던 도중, 11월 30일자 묵상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아, 이것이 내가 그 인용문을 계속 찾아야 했던 이유 중 하나이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는 나를 위한 이야기라기보다 장애를 입은 아이의 부모를 위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장애를 입은 아이를 가진 것은 잃어 버린 것을 엉뚱한 곳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허비한" 시간들에 대한 뜻하지 않은 보상이 있었습니다.

지적 장애아를 위한 보육시설에서, 케서린은 20년 동안 키워졌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적 장애]였으며 한 마디도 못했으며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벽을 바라보거나 뒤틀린 움직임을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그녀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녀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함께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 하나를 잘라야 했습니다. 보육시설의 직원들은 그녀의 행복을 빌었으며 주께서 그녀를 속히 데려가시길 바랬습니다.

어느 날 의사가 보육시설의 담당자를 빨리 오라고 호출했습니다. 케서린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케서린이 자신이 들었던 찬송가들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임종시에 딱 맞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일 찬송, "영혼은 어디서 아버지의 땅을 찾는가, 어디서 안식을 찾는가"를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그녀는 거룩해진 모습으로 30분간 찬양한 뒤, 조용히 숨졌습니다.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퍼탈: 태양과 방패에서 발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것이 진정으로 낭비될 수 있을까요?

필요한 것을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한 좌절스런 경험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이 장애아에게 노래를 불러준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괴롭고, 계획에 없던 우회로는 낭비가 아닙니다—주께서 허락하시는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주님을 의지하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주의이름으로 한다면요(골로새서 3:17). 주님은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행하십니다(이사야 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