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존중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자아 존중"이라는 용어

이 용어는 먼저 자신의 참된 모습 중 어떤 모습에 의해서도 기분 상하지 않도록 무조건적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수용함으로써 자신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를 통 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태도이며 이는 일종의 인본주의적 노력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는 이 용어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용어를 쓰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 각하며 그와 같은 인본주의적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러한 인본주의적 자세를 취하게 되면, 전적으 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설 자리가 없어지며,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한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이를 반대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너희는 새들보다 귀하다"(마태복음 6:26, 누가복음 12:24) 등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가치나 중요성 등의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자비만을 의지함으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독특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타락을 어떻게 보십니까?

중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습니다. 즉, 인간은 어떠한 거룩한 행동이나 생각도 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로마서 14: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자기 몸을 불사르 게 내줄지라도 불신자는 단지 죄를 지을 뿐입니다(고린도전서 13:3). 이유는 이렇습니다: 선함, 중요성, 가치 등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여부에 의하여 정의됩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이 그의 자비하심에 의지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들은 선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2).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인간이 감사함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에 의식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 는 잠재적 능력을 말합니다. 불신자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언급되기는 창세기 9:6 (사형 을 정당화하는 구절)과 야고보서 3:9(사람을 저주하는 것을 금하는 구절)에서만 언급됩니다. 불신 자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성경 저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 은 인간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 시대만큼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 은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인간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순 종하며, 누구를 위해 사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에게 고유한 어떤 것을 성취하거 나 확장시킬 때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주장들을 중단하고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아 긍정 내지 자아 수용(self-acceptance)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제 생각에 "자아 수용"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성경적 관념은 모든 형편에서 자족할 수 있다고 한 바울의 진술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하는 바울의 진술입니다. 외모, 건강 , 명성 등의 비도덕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족하여야 합니다(히브리서 13:5-6). 이 렇게 자족할 수 있게 하는 구체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으며 버 리지 않으시리니 . .사람이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약속입니다. 성품에 관한 도덕적인 영역에서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참을성이 있는지, 겸손한지, 친절한지, 관대한지, 온유 한지, 부지런한지 등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는 자아 수용을 운운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도덕적 영역에서는, 우리의 기쁨은 무분별한 자아 수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 히려, 우리를 불러 자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우리를 수용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강렬하게 느끼는 데서부터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들이신다면 즉 나를 수용하신다면, 나도 내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가운데서 우리를 대적하시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를 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많은 자신을 미워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여 주 시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갖게 해 주신 그리스도의 자비를 확대해야 합니다.

존 머레이는, 그의 뛰어난 책,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성취되고 적용된 구속)에서 이런 날카로운 진술을 하였습니다:

사실 사람이 더 성화될수록, 그는 자신의 구세주의 형 상을 더 닮게 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하지 못한 자신의 모든 결핍에 대해 더 소스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해지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얻으려는 갈망이 더 집요해지며, 남아 있는 죄의 무게를 더 의식하며,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 강력해집니다.(145쪽)

당신의 인간관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천사와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로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 에게 맞는 방식으로 생각하며, 느끼며,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형상적으로 주변에 나타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인간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때, 즉,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을 때, 그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이 제가 인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인본주의는 전혀 인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인간관은 하나님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존재 가운데 첫째이며, 가장 위대하시며, 영원하시며, 정의, 능력, 지혜, 사 랑이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완벽하고 형언할 수 없는 교제 안에서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들보다 더 기쁨이 충만하십니다. 세상의 창조와 구속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무한한 충만입니다. 그는 무엇을 더 보태드릴 수 없는 분이며 자체로서 오직 충만하여 넘쳐나시며 따라서 그의 모든 길 은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십니다(시편 145:17). 반면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 가운데 즐겁게 만족하는 가운데 자아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생각할 때, 당신은 자아 존중이 심히 부족한 학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겠습니 까? 신체 일부에 실제로 추한 모습을 갖고 있거나 혹은 실제로는 전혀 추하지 않지만 단지 자격지 심에서 자신의 모습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 열등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시 겠습니까? 예를 들어, 발가락이 추하게 기형적으로 휘어진 "휜 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단지 상상 속의 "휜 발"이라면, 그 사람이 진정한 자기 평가를 하도록 그 상상을 깨뜨려 주 십시오. 예를 들어, 수학을 곧잘 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 다면, 당신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의 증거를 보여주고, 자신의 재능을 부인하고 모독하는 잘 못을 그만 두게 하십시오. 이를 통해 당신은 그의 잘못을 고칠 수 있으며, 그로 하여금 자신의 부 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의 재능을 감사함으로 사용할 의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도울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실제로 보기 흉한 “휜발”이라면, 당신은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을 구분하여 대처하여야 합니다.

비도덕적인 결핍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일러 주십시오.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시편 23:6; 예레미야 32:40-42; 로마서 8:28)을 그들에게 일러 주고, 그 약 속으로 만족하라고 하십시오.

한편, 도덕적인 "휜 발" (다시 말하면, 죄)에 대해서는, 당신은 그들이 그러한 죄악된 상태 에서 그냥 만족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당신은 그들의 죄책감을 섣 불리 무마시키려 해서는 안됩니다. 보다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에 대 해 일러주면서(요한 1서 1:9).,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변화하도록 강하게 권고하십시오.

어떻게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됩니다. 따라서 학생들더러 그냥 자기 자신을 한 번 성찰해 보라 고 하면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은 궁극적으로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은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하 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을 때 비로소 자신을 아는 참된 지식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오직 신적인 계시에 의해서 얻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을 바로 알게 도와주려면 하나님 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즉, 신학과 성경 주해를 가르쳐서, 하나님의 실제가 학생들의 심령과 마음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생각과 성품들이 그들에게 계시되는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어떻게 학생들이 자족하게 되어,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남을 돕는 자유를 얻게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자신에게 심어두신 자신의 여러 한계들에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요? 하늘 아버지께 서 그분의 지혜와 자비를 따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셨다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명예, 미 모, 힘, 부, 지능 등 수많은 것들을 갖추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라디오나 T.V.의 말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이 부족하여 마음이 슬프다면 이는 불신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평강은 하나님이 이 세상 그 무엇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족의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 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로마서 15:13).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구할" (고린도전 서 13:5) 필요가 없는 위치에 서 있을 때, 말하자면 사랑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우리는 평강 가운데 있게 됩니다. (골로새서 1:4-5에서 소망과 사랑의 관계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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