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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슬픔 : 예수님의 것 그리고 우리의 것

기독교 희락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슬픔이 필요할 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영하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에 언제나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기쁨 이외의 다른 감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쁨만이 유일한 선한 감정인 것은 아닙니다. 그밖에 다른 선한 감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이 없다면, 어떤 감정도 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건한 감정들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다른 경건한 감정의 일 요소로서 혹은 그감정에 동반하여 발생하는 감정으로 작용하면서, 다른 경건한 감정들을 선하게 만듭니다.

슬픔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도 성령님도 죄를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가 슬퍼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슬픔은 가능합니다.

그뿐 아니라, 경건한 슬픔은 또한 죄인들에게 가능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죄로 인해 가능합니다. 슬픔의 한 형태는 잘못된 일을 하였다는 슬픔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7:8~10)

슬픔을 선하게 만드는 적어도 두 가지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슬픔의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슬픔의 결과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의 원인은 죄의 도덕적 추악함에 대한 영적인 지각입니다. 죄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들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합니다. 이처럼 죄를 혐오스럽고 가증하게 인식하게 된 배경에는 진리의 풍미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영적인 사랑과 선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우리의 슬픔은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음미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향하는 잔치 자리에 있어서 비위에 거슬리는 역겨운 냄새를 풍깁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슬픔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표징입니다. 이 점이 슬픔을 선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한편, 죄로 인한 선한 슬픔의 결과는 회개와 거룩함입니다. 사실 회개는 죄를 향한 슬픔을 포함하고 거룩한 삶의 더욱 견고한 경험으로 나가가게 합니다. 이 거룩한 삶은 모든 죄보다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는 마음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슬픔과 회개를 선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로 인한 슬픔 외에 타인이 우리에게 악하게 대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슬픔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기타 재난 등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것으로 인해 슬퍼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고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마가복음 3:5).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가복음 14:34).

예수님의 슬픔은 그분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우리 삶에서 죄를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29-30)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신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상실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고통에 대해서도 경건한 슬픔을 느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베드로전서 1:6).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을 잃었을 때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데살로니가전서 4:13). 그리고 바울은 그의 동족이 잃어버려진 바 된 것에 대한 슬픔을 언급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로마서 9: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6:10에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의 삶의 표징이며 그리고 신자의 삶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는 놀라운 진술을 합니다. 이러한 기쁨이 바로 우리의 슬픔을 경건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슬픔의 경험이 단순하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러한 경험—슬픔 혹은 근심 가운데 기뻐하는 것—은 말로 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나오는 흐느낌은 기쁨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실로 그것은 충만하게 만개한 기쁨이 아닐 것인데, 우리는 다음의 말씀이 성취될 때에 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4)

슬픔을 통과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기쁨은 오히려 우리가 장래에 소망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미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 그 때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히브리서 12:2)으로 견디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이나 십자가 상에서 그가 부활하실 때 느꼈던 것을 모든 것을 느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예수님이 그러한 기쁨을 소망하셨으며 그 소망은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의 속량과 우리의 모든 죄가 없어질 것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신음합니다(로마서 8:23). 그런데, 이러한 신음과 슬픔은 오직 영광의 소망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에 의해 그 슬픔의 형태와 모양이 형성될 때에만 경건한 것입니다.(로마서 5:2-3). 이러한 기쁨은 고통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씨앗의 형태로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희석되지 않은 온전한 원액의 순전한 농도를 가진 기쁨의 포도주를 낳는 위대한 포도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신 어떤 슬픔이라도 맞아들입시다. 이제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이제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는 약속(시편 30:5)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으로 우리의 슬픔을 지탱하고 그 모양을 형성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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