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편 105:4에 대한 묵상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임재”란 히브리어 단어 “얼굴”에 대한 통상적 번역입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그의 “얼굴”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히브리식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앞에 있다는 것은 그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편재하는 분이며 그러므로 항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붙들고 계십니다. 그의 능력은 만물을 지탱하며 다스리시는 것 안에 항상 존재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언약의 측면에서 항상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늘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여호와를...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 우리가 이를 의식하고 이에 의탁하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늘 끊임없이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등한시하고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주님을 신뢰하고 의뢰하지 않습니다. 즉, 주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시지 않는"—즉, 우리 마음의 눈으로 볼 때 주님이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하게 인식되지 않는 그러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그의 인격의 빛남—은 우리의 육신적 욕망들의 커튼 뒤로 숨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두운 상태는 늘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분의 임재를 항상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자각을 즐기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는 "구하는 것"을 통해 일어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무엇을 뜻합니까? 구약과 신약 공히 말씀하기를, 이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마음의 의식과 우리 마음의 애정을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고정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역대상 22:19)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1-2)

이렇게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설정하는 것은 생각이 그냥 떠돌아 다니는 것과 반대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려는 의식적 선택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5). 이는 우리 측면에서 볼 때에는 우리의 의식적 노력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구하는 그러한 노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러한 정신적, 정서적 노력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려서가 아닙니다. 동전이나 양이라면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통해서 나아가거나 아니면 빙 돌아서 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통해서 나아가거나 돌아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숨어 계십니다. 우리는 중개하는 매개체들을 통해서 나아가야 하며 장애물들을 돌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을 통해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은혜의 증거들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서 나아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그의 계시의 수단을 통하여 그에게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고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빙 돌아서 가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침체되게 하는 활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도망가고 돌아서 가야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세상과 말씀에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를 지극히 민감하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침체되게 하고 눈을 가리며 하나님을 찾고 싶어하지도 않게 만드는지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로부터 떠나고 그로부터 돌아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사야 55:6)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욥기 8:5)

구하는 것은 부르는 것과 간구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오 주님, 저는 눈이 먼 자와 같이 어두우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를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주의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주님을 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입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편 10:4). 따라서, 주님을 구하는 데 있어 겸손은 필수적입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을 향한 위대한 약속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그를 찾게 될 것입니다.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역대상 28:9) 그리고 그를 찾았을 때는 큰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당신과 함께 그의 얼굴을 구하는,

존 파이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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