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소서

시편: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느낌, 5부

시편을 본문으로 하는 이 연속설교의 제목은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느낌” 입니다. 이 제목이 말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한 편으로 시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이므로, 시편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가르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시편은 시 또는 노래인데,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일깨우고, 표현하고,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이 연속설교를 통해 영적침체와 낙담(시편 42편), 후회와 죄책감(시편 51편) 그리고 감사와 찬양(시편 103편)이라는 정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난 감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앙갚음이나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텐데, 몹시 부당하거나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아동 성폭행, 노골적인 인종차별, 배우자 살해 그리고 결혼서약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을 얻으려는 짓을 대할 때, 우리는 그러한 감정과 맞닥뜨립니다.

정의가 이뤄질 때 생기는 만족감?

커다란 악과 불의를 그려낸 영화를 본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악당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듯한 장면에서, 발끈 성이 납니다. 그리고 고결하고 겸손하며 희생양이 된 누군가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악당들을 잡아 재판에 넘깁니다. 이 때, 정의가 실현됐다고 크게 만족한다면 그 만족감은 선한 것일까요?

현실 속에서 여러분을 부당하게 대한 – 어쩌면 지독히 부당하게 대한 이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껴야 마땅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할까요?

저주시편들

성경에는 저주시편이라고 하는 시편이 여럿 있습니다. 이름을 그렇게 붙이는 것은 저주의 내용이 담겨 있어서인데, 하나님의 원수들이 받게 될 저주, 심판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들 시편을 대개 문제시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따라서 이들 시편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바와 상반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시편 69편을 저주란 저주는 한데 모아 놓은 시편 중 하나라 여기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느끼는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데 본문이 어떤 식으로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고자 애쓸 것입니다.

핵심: 신약성경이 어떻게 사용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이 시편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즉, 이 시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일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시편 69편 중에서 일곱 구절이 신약 속에 명백히 인용되고, 그것이 저주가 담긴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저주시편 인용하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실은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고, 그 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설명하는데, 특히 유용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신약에서 이 시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봅시다.

시편 69편 개관

다윗이 처한 정황은 그가 원수들로 인해 어쩔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대국의 군인이 아니라 다윗 개인의 원수로 보입니다. 그들은 비정하고 잔인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5절에서 인정하기를, 하나님께서 그가 저지른 잘못들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수들의 적개심은 다윗의 그런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다윗을 증오합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다윗을 비방합니다. 4절: “까닭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의 머리털보다도 많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들, 내게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새번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

다윗이 처한 위태로움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열렬히 사랑하고, 그로 인해 원수들에게 비난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7절: “내가 주를 위하여[오 하나님]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9절: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오 하나님]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고통은 다윗에게 부당할뿐더러 그는 바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그것을 견딘다는 것입니다.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하나님께서 비난 받으실 때, 시편기자도 비난을 받습니다. 하나님, 다른 누구도 아닌 주님을 증오하는 이들이 내 삶을 힘겹게 하는 것은 내가 주님을 대변하는 사람인 까닭입니다.

다윗의 탄원

다윗은 하나님께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구해달라고 탄원합니다. 14절: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18절: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그리고 이어지는 22-28절은 전부 다 원수들을 향한 저주와 악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원수들 – 그의 원수들과 하나님의 원수들 – 이 하나님의 심판을 속속들이 경험하고 유죄선고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원수들의 구원을 기도하기는커녕 그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22-24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음

그런 다음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다시금 구원을 부르짖고, 찬양을 다짐하며 시를 마칩니다. 29-30절: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따라서 요약하면,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다윗 왕을 봅니다. 그는 흠이 있지만(5절), 의로우며 (28절)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속량하고(ransom), 구원하는(redemption) 하나님의 자비(18절)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곤고한 이들이 처한 사정을 변호하고(32-33절), 자신의 원수들과 하나님의 원수들의 부당한 박해로 고난 당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비탄에 잠겨 구원을 부르짖는 중에, 하나님께 원수들의 처벌을 구하는 기도가 일곱 절을 차지합니다.

신약에 나타난 시편 69편

그렇다면 신약은 시편 69편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첫째, 생각건대, 신약은 시편 69편을 인용할 때, 본문을 민망하게 여기거나 비판의 시선으로 보는 법이 없습니다. 신약 어디에도 오늘 본문을 우리가 거부하거나 신경쓰지 말아야 할 말씀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죄성에서 비롯된 개인의 복수심에 불과하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상하건대, 우리가 신약에서 배우는 것은 예수께서 이들 시편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여기시기 때문에(막 12:36, 요 10:35, 요 13:18) 신약은 이들 저주시편을 거룩한 진리로서 존경과 경의로 대한다는 점입니다.

신약성경은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시편 69편을 인용합니다. 하나는 본문을 다윗의 말로 인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이 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시함으로써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난폭하고 악한 자들이 처벌받기를 바라는 다윗의 기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가?

다윗이 한 말로 인용함

첫째, 사도바울은 로마서 11:9-11에서 시편 69:22-23을 인용합니다. 시편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다윗은 기도 첫머리에서 주님께서 원수들에게 분노를 쏟으실 것을 구합니다(24절). 음식을 달라고 하면 원수들이 독을 준 것처럼(21절), 잔칫상으로 인해 그들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이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보상이 도리어 심판임을 보여주십시오.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길을 찾지 못하고 영원히 떨며 전전긍긍하게 해 주십시오.

바꾸어 말하면, 이 기도는 그런 원수들이 정죄와 멸망, 심판 받기를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27-28절: “그들이 주님의 사면을 받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로운 사람의 명부에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새번역).” 다윗은 그들을 영벌에 처할 것을, 지옥에 두실 것을 기도합니다.

죄성에서 비롯된 개인의 복수심이 아님

자,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죄성에서 비롯된 개인의 복수심이라면, 사도 바울이 그 부분을 적어도 인용하기를 꺼리고 아마 바로잡고자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울은 그 반대입니다. 서슴없이 시편69편 말씀을 끌어다 로마서 11장에 나타난 그의 가르침을 뒷받침합니다. 그것은 바울의 논지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이스라엘 대부분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거부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이르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대부분이 완고해져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는 것 자체가 심판입니다.

로마서 11:7: “그러면 무슨 결과가 생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고해졌습니다(새번역).” 25절: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새번역).” 그래서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구원을 위해 정하신 이방인의 수가 다 찬 후라야 이같이 완고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그가 인용했을 법한 구약 성경 중에서) 시편 69편, 이른바 저주시편을 떠올리고 그 말씀을 가져다 11장의 논지를 뒷받침합니다. 시편 69편 22-23절을 인용해 로마서 11:9-11을 씁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바꾸어 말하면, 바울이 이 시편의 의미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윗의 말을 죄성에서 비롯된 개인의 복수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의 대적들에게 일어날 일을 진실되게 표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이고, 원수들은 그를 거부하고, 비방하고, 모욕합니다. 다윗은 자기 인생 가운데 상당한 인내를 드러냅니다(시편 109:4). 그러나 언젠가 다윗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말하고, 그의 기도로 대적들은 어둠과 완악함에 처하는 때가 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까닭에 그들은 다윗의 말대로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임할 심판에 대한 진지한 예언

바울은 다윗이 내는 목소리가 그저 앙갚음의 감정이 실린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심판에 대한 진지한 예언으로 들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자신의 대적들에게 내리려는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시편 69편을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구절들을 인용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논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메시아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완고해질 것이다.

신약이 시편 69편을 인용하는 첫 번째 측면은 즉,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하는 대언자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대적들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인용함

신약성경이 시편 69편을 인용하는 두 번째 측면은 이것을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롬 1:3, 마 21:15, 마 22:42)이며,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 다윗에게 일어난 일이 기름부음 받은 마지막 왕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에게 있을 일을 예시(豫示)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시편을 읽고, 장차 완수될 자신의 사명을 앞서 보셨습니다.

잠시 4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2:13-17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상인들을 어떻게 성전 밖으로 내쫓으시는 지를 봅니다. 16절: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성경으로 충만한 제자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심을 봅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내 아버지집”이라 하는 것을 듣고 그들은 시편 69:9을 떠올립니다. 17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바꿔 말해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이 그런 다윗의 고백 속에 예시(豫示)됨을 보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미움 받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5:24-25에는, 다윗이 백성들에게 미움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에게 미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8절). 이 때, 시편 69편을 인용해 그 말씀이 하나님의 “율법” 또는 하나님의 교훈에 속한 것임을 분명하게 하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이는 시편 69:4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겪은 일을 알고 계시며, 위 말씀을 자신에게 일어날 일의 예시로 보시는 것입니다. 다윗이대적들에게미움받을때라는이대목은내가겪을일을가리키며내안에서성취되어야할말씀이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역사상 가장 중대한 순간에, 예수님은 숨을 거두십니다. 다시금 시편 69편 말씀을 이루기로 작정하시고 몸소 고난 당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십니다. 2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을 타서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새번역).”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시편 69편 가운데 사셨고, 이 시편을 전적으로 이해하셨고, 그것을 자기 존재와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셨다는 점입니다. 이 외에 요한복음 19:28-30을 달리 설명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는데, 요한복음은 그것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새번역)

사도 요한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시편 69편을 성취하셨습니다. 시편에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헌사가 주어질 수 있을까요? 저주의 내용 때문에 우리가 대개 문제시하는 시편 69편은 예수님께서 삶으로 살아내셨으며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취한 바로 그 시편인 것입니다.

비방을 견디신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으로서 시편 69 편을 인용한 실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9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인내로 대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게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합니다.

놀랍게도, 여기서 바울은 시편69:9을 떠올리고 그 말씀을 인용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바꿔 말해서, 바울은 그러한 다윗의 기도를 들어서 그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사람들의 비방을 견디셨다는 것, 그것에 특히 그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래서 시편 69편에 관한 주장은 신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심판입니다. 저주의 내용은 죄성에서 비롯된 개인의 복수심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보응을 인정하는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고난입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을 위해 견디는 고난입니다. 그러한 고난은 그의 대적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수단이 되거나 완악함을 돌이키지 않고 심판에 이르는 수단이 됩니다.

시편 69편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 이런 질문으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시편 69편을 읽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인가? 여기 세 가지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옮음을 인정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말하는 다윗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 받는 다윗, 회개하지 않는 주님의 대적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갈망하며 그분의 심판이 옳음을 인정하는 다윗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진정 임할 것이고, 그분의 심판은 옳은데다, 더 나아가 우리가 바랄 일이다. 주님의 대적들이 돌이키는 것이 불가능한 심판의 때가 임함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신적인 심판이 임할 것이고, 그 날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다윗의 저주시편이 분명히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고 느껴야 할 바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예시(豫示)

우리는 다윗의 말을 예수님의 사역을 앞서 보여주는 예시(豫示)로서 들어야 합니다. 다윗이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겪는 바를 예수께서는 더 위대한 측면에서 몸소 자신의 고난과 죽음 속에서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구원을 위한 것이자 심판을 위한 것입니다. 그 고난을 자기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위한 고난이요, 그럼에도 완악한 채로 있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위한 고난일 것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4-5)

용서할 수 있는 특권

그리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위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며, 행해야 할까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저주 시편에 나타난 저주를 두고 원수들을 저주할 수 있는 특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바울이 염두에 둔 것은 시편 69편은 우리에게 그와는 정반대로 행할 것을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로마서 15:3에서 시편을 인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기부인을 권면하기 위함이지 보복을 바라는 욕망을 채울 것을 부추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바꾸어 말하면, 인내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는 시편 69편 말씀 속에 진노와 형벌과 심판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런 것입니다. 심판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이 옳다는 사실을 힘입어,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는 다른 이들로 인해 겪는 고난 중에도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9-21)

회개한 사람이라면 타는 숯불은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형벌이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옳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누가복음 6:27-29,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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