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은 죽음에 내준 바 된 후 살아나셨는가?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다음 주를 위한 세 가지 질문

저는 원래 오늘 본문에 대하여 하나의 메시지로 설교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을 묵상하면서, 특히 주일날 이루어지는 교통에 대하여 그리고 특히 이 장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일종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것과 관련하여 묵상하면서, 이 위대한 본문에 대하여 두 주에 걸쳐 메시지를 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제가 제시하고자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들 중 하나는 오늘 제시할 것이고 세 개는 다음 주일에 제시할 것입니다.

1) 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의로 여기어지는가? 22절에서 "그러므로 그것[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할 때, 여기서 "그러므로"는 무슨 의미인가?

2) 어떠한 종류의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의로 여기어지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우르를 떠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처음의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가 아니면 창세기 15:6의 믿음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별과 같이 많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의 믿음인가 아니면 창세기 17장의 믿음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 늙어 생산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때의 믿음인가 아니면 창세기 22장의 믿음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의 믿음인가? 우리는 맨 처음의 눈 깜박이는 것 같은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되는가 아니면 일평생의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되는가?

3) 아브라함과 우리가 의로 여겨지게 하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의로 여겨지는 믿음은 우리가 발휘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롭게 여겨질 공로가 될 정도로 충분히 선하다고 여기시는 그러한 종류의 것인가 - 마치 칭의를 얻는데 오백만 달러가 필요하고 나는 백만 달러밖에 충당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나의 백만 달러를 오백만 달러로 여겨 주신다는 것과 같은 것인가? 혹은 칭의는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다음 주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의롭다하심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믿어야만 하는가?

금주에 다룰 주제는 이것입니다: 의롭다하심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믿어야만 합니까? 이에 대하여 24절에서 다음의 사실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23-24절은 말씀하기를, 창세기 15:6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이유는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우리를 위한 것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기록하게 한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것을 매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것을 읽고 이것을 듣고 당신이 매우 개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너를 의로운 자로 내 앞에 서게 할 것이다. 나를 믿으라. 나는 너의 믿음을 의로 여길 것이다." 당신은 그의 말씀을 듣습니까? "나를 믿으라. 내 안에서 안식하라. 나에게 의존하라. 나를 의지하라. 잘 될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한 의를 가지고 있다. 너는 나를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너를 위하여 나의 것을 가지고 있다. 나를 신뢰하라. 나를 믿으라. 그것이 너의 의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24절 중간 부분에서 사도는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분이 누구인지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하여 믿어야 하는 유일한 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그가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의하여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믿음이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이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할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기초와 믿음의 내용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에 관한 세 개의 진술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십니다. 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로운 구속을 행하십니다. 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승리하는 정의를 행하십니다. 로마서 4장의 모든 것은 칭의의 수단에 관한 것이었으며, 믿음에 의한 칭의의 기초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바울 사도는 칭의의 기초로 다시 돌아갑니다(로마서 3:24-26로 돌아갑니다). 칭의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칭의의 수단은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어떻게 이 위대한 사역과 연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칭의의 기초는 그 모든 것들 중 가장 중요합니다.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지금은 작고하여 주와 함께 있는 존 머레이는 '구속: 성취되고 적용되는' 이라는 위대한 작은 책을 썼습니다. 저는 그 책을 25년 전에 읽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모두 그 책을 읽어보기를 원합니다. 그 책은 여러분의 믿음의 나무 속을 강한 섬유질로 꽉 채워줄 것입니다. "성취되고 적용되는"이라는 두 단어는 제가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칭의의 기초와 칭의의 수단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성취된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것으로서 우리와는 떨어져서 우리 밖에서 성취된 것을 일컫습니다. 적용되는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위대하고 성취된 구속의 사역에 연결하기 위하여 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리고 우리 안에서 행하신 무엇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으르 통한 구속의 적용에 대하여 4장에서 죽 다룬 후 성취된 구속에 대한 강한 선언을 하면서 로마서 4장을 끝맺습니다. 우리가 믿는 분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구속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가 믿는 분이며, 우리가 의뢰하는 분이며,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그 안에 두는 분입니다.

따라서 여기 우리가 매우 단순하게 그리고 간략하게 볼 것이 있습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 자비로운 구속, 그리고 승리하는 정의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이것들을 한 번에 하나씩 취하여 성경 본문 속에서 살펴보고 마음 속에서 그리고 심령 속에서 이것들을 음미하도록 합시다.

1.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시는 분을 의뢰합니다.

24절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첫 번째 자리에 놓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17절에서 이삭을 낳게 하는데 소요되었던 그 능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아브라함]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당면한 초점은 아브라함이 100세 되고 그의 아내가 생산치 못하는 때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범적인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19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제, 바울은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는 이 동일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믿음은 죽은 자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이것을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부른 이유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주의—자연의 일부분이 아닌 현실은 없다는 관점 혹은 신앙, 초자연적 실재는 없다고 하는 믿음—에 의하여 특징지워진 한 세기의 마지막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연주의적 진화—만물의 기원을 초자연적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배제하고 설명하려는 노력—는 자연주의라는 신앙의 가장 만연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또한 금세기 들어 만연한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자연주의적 방법입니다. 성경적 연구에서 이 믿음은 황폐케 하는 것입니다. 루돌프 불트만은 이러한 믿음에 관하여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즉,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과 관련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은 전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칼 F. H. 헨리, 계시, 그리고 권위, Vol. IV [휘튼: 크로스웨이 서적, 1999, 원본. 초판. 1979], p. 333). 저는 "상상할 수 없는"이라는 어구를 여기서 따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로 여겨주시는 믿음은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시는 분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불트만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하십니다—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90세 된 여인의 죽은 것 같은 태에서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지 사흘되던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으며 그를 우주의 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수 있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믿습니다.

2. 우리는 자비로운 구속을 행하시는 분을 믿습니다

25절 전반부를 주목하십시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여기서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살리신 분의 죽음은 미리 계획되어 있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원해서 어떤 죽임을 당한 자를 그냥 살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죽음을 고안하신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다음의 두 핵심 어구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2) 내줌이 되고." 예수님은 내줌이 되셨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군인들에 의해서? 빌라도에 의해서? 헤롯에 의해서? 유대 군중들에 의해서? 아닙니다. 그들 중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과 빌라도와 헤롯과 유대인들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예수님을 내준 것이 아니지요.

사도행전 2:23은 이에 대하여 명확하고 직접적인 답을 제공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 내주셨습니다. 로마서 8:3은 말씀하기를,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로마서 8:32은 말씀하기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고안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는 그냥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하여 죽음에 내준 바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안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25절):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를 처리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범죄함에 대하여 무언가를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셨나요? 하나님은 대신하는 죽음을 제공하셔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범죄 때문에 죽을 필요가 없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3은 말씀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따라서 우리의 범죄들은 깔개 밑에 감추어 둔 것이 아닙니다. 간과하고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이미 정죄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처벌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처벌 받으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구속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죄들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지옥의 벌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몸값이 지불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속은 우리가 아무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마땅하며 지옥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자비로운 구속입니다. 이 분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하여 믿는 하나님—자비로운 구속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범죄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고안하셨습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는 승리하는 정의를 행하시는 분을 믿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 자비로운 구속, 그리고 이제 승리하는 정의를 행하시는 분을 믿습니다. 이제 무슨 말이고, 어디서 제가 이런 표현을 얻었을까요? 저는 25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취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죽으셨을 때 우리의 용서와 의롭다 하심을 위한 완전하고도 충분한 값이 치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무덤 안에 내버려 두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죄를 위하여 이미 완전히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대속과 순종의 완전함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그의 죽음 안에서 이루신 것 즉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한 값을 치르신 것은 흠 없이 성공적이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그의 피를 흘리셨을 때, 그는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죄들은 이제 덮어지고 값이 치러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채로 계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오직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죄의 값이 완벽하게 치러졌을 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영장이 없습니다. 그를 무덤 안에 계속 둔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무덤 안에 있으실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 2:24).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승리의 정의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정복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승리의 정의입니다. 왜냐하면, 정의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지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한 값을 완벽하게 치르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끈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끈 죄들 즉 우리의 죄들이 완벽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십자가 상에서 값이 치러졌으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유일한 이유는 지나갔습니다. 우리의 칭의는 완전하게 확보되었습니다(아직 믿음에 의하여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도 확보되고 값이 치러졌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거한다면 이는 불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유없는 처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은 정당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승리의 정의였습니다. (히브리서 13:20을 보십시오.)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하여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따라서 초두에 제기하였던 문제와 함께 끝마치겠습니다. 의롭다하심을 받기 위하여—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기 위하여—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믿어야만 하는가? 답은 1) 그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것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셨고 2) 우리를 우리 죄들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의 죽음을 고안하시는 것 안에서 자비로운 구속을 행하셨고, 3) 우리의 칭의의 기초가 그의 아들의 죽음 안에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승리의 정의를 행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그를 믿으십시오. 마음을 열고 이 구원의 영광을 영접하십시오: 상상할 수 없는 능력, 자비로운 구속, 승리하는 정의. 이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의로 여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함께 안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닌 의를 가지게 될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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