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에도 서로 다른 정도가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선과 악의 경계선 안에는 도덕적 등급이 존재합니다. 선, 악 둘 중의 하나로 구분됨으로써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도 덜 심한 악이 있고 더 심한 악이 있으며, 선에도 작은 선이 있고 더 나은 선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술입니다. 이러한 점을 잘 인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만큼 사랑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해서 견지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온전에 못 미치는 것이 죄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을 때때로 놓치게 됩니다. 어떻게 죄를 선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여기서 온전함에 대한 정의가 하나님과 다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 . .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고린도전서 7:38, 36) 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더 잘" 하는 데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잘"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더 잘"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이 경우 "더 잘" 하는 것보다 덜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명백하게 말합니다.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에도 나쁜 것, 더 나쁜 것, 최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누가복음 12:47-48)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악에도 등급과 악한 정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악에도 등급 혹은 악한 정도가 있고 지옥의 형벌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관심사는 온전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이 생에서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고(빌립보서 3:12) 나는 자주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의지하는 죄인들에게는 항상 용서함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나는 또한 회색 영역의 존재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즉,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이상적인 행동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이 최선의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불확실함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회색 영역이 인생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모호함과 함께 살아야 하며,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부담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반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생에서의 우리의 삶은 종종 기대에 못 미치고, 우리의 선택에는 모호한 회색 영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뿐만 아니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대에 못 미칠 때라도, 우리는 잘 하거나 더 잘 하거나 혹은 최선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도 회색이 있지만, 흰색 안에도 흰색의 명암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흰색은 죄가 아닙니다(고린도전서 7:36).

이 점을 아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듯 사랑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나는 말합니다. 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