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무력함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명기 10:17-19)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뇌물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지고 계시며 뇌물제공자도 다 통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해가 양초 위에 있는 것처럼, 뇌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십니다.

또한 모세는 기록하길,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특별 대우를 통해 특정인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마치 뇌물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돈이 아니라 편파적인 대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런 행위들 위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행동들을 할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무언가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면, 그냥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시면 됩니다. 뇌물이나 편파적 대우나 이런 수단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으십니다.

정의로운 태도가 적용되어 발생하는 결과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외모로 사람을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의가 적용된 결과를 대처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스스로 충족한 분이십니다.

이제 여기 가장 중요한 부분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자기 충족성에 기초하여 모세가 말하하였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하나님은 부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으실 수 없고, 외모로 사람을 취해야 할 어떠한 부족함도 없으므로, 하나님은 가난하여 뇌물을 제공할 여력도 없고 편애를 받을 만한 모습도 전혀 없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위하여 행하십니다.

그 다음 19절에는 적용이 나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충만의 흘러넘침으로부터 계속해서 혜택을 받아 오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행위로써 뇌물을 바치려고 하거나 그의 편애를 얻기 위해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부 같은, 고아 같은, 나그네 같은 무력한 상태에 대해 깨닫고, 스스로 충족하신 주님이 주시는 값없는 은혜에 의지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받는 것처럼 사랑하는 기쁨과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초월적인 자기 충족성의 영광에 대해 무지하고 완고한 자들이 아닌 부드러운 자들로 만들어 주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