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 아니라 평화를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세기 15:1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는" 시기와 일치하였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멸절에는 이러한 심판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에 정확히 맞추어 심판이 시행되게 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심판이 시행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도구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실질적으로 아모리 족속을 무찌르는 전사는 자신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여호수아 24:8)

하나님께서 멸절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손을 통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긍휼 없는 교만을 경고하셨습니다(신명기 9:4-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다른 말로 하면, 이 학살은 인간의 불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복음 전도와 개혁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인종적, 지리적,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자 방랑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것은 구속사 안에서 독특한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선택하셔서 그분의 거룩함과 공의와 열방 가운데 선택하시는 은총의 표상으로 그들을 통치하셨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웠을 것이라"(요한복음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