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의 분석과 기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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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 Teacher, desiringGod.org

"율법주의"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과 관련이 있는 "legal"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성경은 율법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혹은, 더 보편적으로, 계명과 규율에 대한 특정한 태도입니다.

다음은 율법주의의 예입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행위를 의지함이라" (로마서 9:31:32). 율법주의의 본질은 순종의 원동력이 믿음이 아닐 때 입니다.

주의해서 보십시오: 율법주의는 단순히 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잘못된 방법 - 믿음이 아닌 다른 원동력으로 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추구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4). 우리는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선한 추구를 "순종적 믿음"으로 부르도록 합시다.

따라서 율법주의는 믿음보다 다른 원동력에 의해, 성령보다 다른 힘에 의해 법을 추구하는것입니다. 율법주의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것을 "행위"라고 부르며(로마서 9:32), 이 동력의 에너지를 "육체"라고 부릅니다 (갈라디아서 3:3). "행위"는 "믿음"의 반대이며, "육체"는 "성령"의 반대입니다. 따라서 율법주의는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어떤 원동력과 어떤 연료로 이것을 추구하느냐 입니다.

따라서 율법주의의 능력은 우리자신(육체)에서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의 목표는 하나님의 가치를 일반적인 가치로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위의 원동력은 이 거래에서 하나님께 제시할 수 있는 어떤 자기생산적인 것이어야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로마서 4:4). 율법주의는 이를 부채상환의 문제로 다루며 자신의 가치를 하나님께 극대화시킵니다.

그러나 "순종적 믿음"의 능력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영)으로부터 나옵니다. 순종적 믿음의 목표는 모든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은혜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원동력은 하나님과의 거래에 있어 아무것도자기 생산적인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순종적 믿음은 받는이의 기쁨을 다루며 하나님의 은혜를 극대화시킵니다.

기도와 성경읽기에의 적용

훈련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충동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도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율법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규율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위해 성령을 연료로 움직이는믿음의 원동력에 회전력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베드로전서 4:11),

존 파이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