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연대기

연대기를 공부하는 목적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순서를 알아보고 그 일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사의 원인과 결과를 결정하기 위해 - 역사가들이 노력하는 것과 같이- 어떤 사건이 먼저 일어났으며 사건과 사건 사이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보는 것으로서 역사학의 중요한 분야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날짜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영향을 끼친 사건의 순서를 아는 것 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정확한 날짜를 부여할 신약 사건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전 서양 세계가 역사를 B. C. (주전, Before Christ)와 A. D. (주후, Anno Domini)로 나누는 것은 기독교의 영향에 관한 놀라운 증언입니다. 이 연대 방법이 중세에 널리 퍼지기 전에는 사건들이 로마의 설립이나 어느 왕의 통치 시작과 같은 다른 중요한 사건과 관련하여 연대되었습니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6 세기)라는 수도사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역사를 나누는 현재의 연대 방법을 고안했을 때, 그는 계산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B.C. 4년 이전에 태어나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마태복음 2:1에 의하면, "헤롯왕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으로부터 헤롯은 B. C. 4년 봄에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대사XVII, 8, 1). 따라서 예수님은 B. C. 4년 이전에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잘 모릅니다. 누가복음 2:1-2은 예수님의 탄생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을 때"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한 것이라)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문을 일으킵니다. 언제 그런 호적을 했으며 언제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습니까? 둘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충분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초기 참고 문서와 함께 이집트에서 발견된 호적 서류를 보면 그런 등록을 14년마다 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은 호적이 거의 B. C. 8년 또는 9년에 일어났다고 봅니다. 호적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탄생은 조서가 내려진 실제 년도보다 어느 정도 뒤에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아마 B. C. 7년쯤).

한편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요세푸스는 구레뇨가 A. D. 6년에 수리아 총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사XVIII, 8, 1, 1 과 2, 1 또한 XVII, 13, 2).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으로는 너무 늦은 연도 같습니다. 그러나 윌리암 렘지 경은 고대 비문으로 구레뇨가 B. C. 6년 전에 아구스도 황제의 특사로 수리아에서 복무하였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2:2에서 누가가 언급한 시간입니다. 누가가 당시의 수리아의 정규 총독 대신에 구레뇨를 언급한 것은 구레뇨가 수리아를 다스린 기간은 정규 총독들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탄생에 더 정확한 날짜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림잡아 B. C. 7년 즈음에 탄생하셨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B. C. 4년의 헤롯의 죽음으로부터 적어도 2년 전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태복음 2:16과도 잘 맞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달과 날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없습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은 4세기에 시작되었고 아마 이방인들의 동지 축제일을 대신하는 기독교적 대안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시작

누가복음 3:23은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대략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두세 살 더 많았을 수도 있고 더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참조. Test XII Pat, 레위기 2:2; 12:5). 앞에서 추정한 예수님의 탄생 시기에 30년을 더하면 A. D. 24년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등장 이후에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으므로 이 시기는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3:1-3은 세례 요한이 공공 석상에 나타난 것이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을 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A. D. 26년 에서 A. D. 36년 까지 총독이었고 디베료 치하 제15년은 A. D. 27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A. D. 27년 전에는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요한의 사역 시작과 예수님의 사역 시작 사이에 긴 시간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예수님은 아마도 27년 또는 28 년에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의 사역 초기에 약 33세이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의 죽음

네 복음서 모두 목요일 저녁에 마지막 만찬이 있었고,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못박히셨고, 분명히 일요일 아침 일찍 부활하셨다고 은연 중에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8:1; 마가복음 14:42; 누가복음 24:1). 고린도전서 15:4에 나오는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주장은 유대인이 하루의 일부분을 하루로 계산하는 관습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19, 마가복음 14:12 및 누가복음 22:15에 의하면, 마지막 만찬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의 탈출을 매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였습니다(출애굽기 12장-15장). 그러나 요한복음 18:28과 19:14에 의하면, 유월절 식사는 금요일에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있는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식사가 아닙니다 (13:1).

이 불일치에 대해 완전한 해결점은 없으나 레온 모리스(요한복음 785)는 이것은 다른 달력을 사용한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제안을 합니다. "예수님이 따르신 달력에 의하면, 유월절 식사였다. 그러나 성전 권세자들은 다른 달력을 따랐다, 그에 의하면 희생양은 다음날 죽임을 당했다. 요한은 이것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죽임 당하셨다는 진리를 끌어낸 것 같다(요한복음 19:36; 고린도전서 5:7)."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아내서 어느 해에 돌아가셨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요한복음에 있는 참고적인 시간들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적어도 세 개의 유월절(2:13; 6:4; 13:1)을 언급하고 있으며, 어쩌면 네 개의 유월절(5:1)을 언급합니다. 유월절은 일년에 한번 있는 잔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은 적어도 2년 어쩌면 3년에 걸쳐 있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천문학으로부터의 증거를 더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은 유대력 니산달(우리의 3월과 4월과 겹침) 15일에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니산달 14일에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26-36년(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었던 기간) 중 어느 해에 니산달 14일이나 15일이 금요일이었는가로 귀결됩니다. 답은 27, 29, 30년 그리고 33년입니다. 이 중에서 27년은 너무 일찍이고 33년은 아마 너무 늦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29년이나 30년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2년 동안 또는 3년 동안 계속되었고 돌아가셨을 때 35세 또는 36세이셨습니다.

A. D. 30년에서 A. D. 50년까지의 신약 사건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죽음과 승천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록한 유일한 신약 성경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때때로 보이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다음의 주요 사건은 오순절(사도행전 2:1)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이 경과한 날인 "칠칠절" (출애굽기 34:22, 신명기 16:9)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사도행전 2:1의 오순절은(사도행전 2:4) A. D. 30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지 약 50일 후와 승천 후 약 10일 후에 일어났습니다.

이후 사도행전의 앞 부분의 사건들은 여러 사건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확한 언급이 없어서 연대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도 시대의 사건을 연대하는 보통의 방법은 이러합니다. 먼저 신약 밖의 출처에서 비교적 확실하게 연대를 잡을 수 있는 적어도 한 사건을 찾습니다. 다음에는 사건들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냄으로서 이 사건 전후에 일어난 사건들의 연대를 잡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두 사건 사이에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말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연대 잡기는 다만 근사적으로 잡는 것입니다.

아가보에 의해 예언되었고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사도행전 11:28-29)의 통치 기간 중에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큰 흉년"이 우리의 연대 잡기에 있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당시 살아 있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흉년이 46년과 48년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고대사 XX, 5, 2). 또한 우리는 미쉬나(소타 vii, 8)라는 책으로부터 47년 가을에서 48년 가을까지는 유대인들이 땅을 쉬게 하고 아무 것도 수확하지 않는 안식년(레위기 25:2-7)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흉년을 악화시키고 연장시켰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46년 어떤 학자는 47년이라 말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 12:20-23에서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을 기록하기 전에 이 흉년(사도행전 11:28)을 기록한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고대사 XVIII, 6, 10 및 7, 2; XIX 5, 1 및 8, 2), 헤롯(B. C. 4년에 죽은 헤롯 대왕의 손자)의 죽음을 B. C. 44년 봄에 있었던 일로 연대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헤롯의 죽음이 누가가 기록한 흉년보다 몇 년 앞서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누가가 여기서 연대적인 사실들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사도행전 12:1-24은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를 현재화하기 위한 일종의 플래시백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더블유. 엘. 낙스는 "누가는 다른 소스로 옮기기 전에 적당한 정지 시점까지는 하나의 소스에 계속해 나가는 사료 수집의 당시 일반 관행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누가가 여기서 연대를 잡는 데에 부정확하다고 공격하는 것은 고대 역사가들의 방법을 전혀 무시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36f).

헤롯이 44년에 죽었기 때문에(사도행전 12:23) 우리는 헤롯이 칼로 죽인 야고보 사도(사도행전 12:2)가 44년 바로 전에, 아마도 43년 유월절 기간 동안 (사도행전 12:3) 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투옥과 그의 기적적인 풀려남(사도행전 12:3-17)도 이 기간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 11:28의 중요한 흉년으로 돌아갑니다. 안디옥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큰 흉년이 든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구제를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행전 11:29).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에 구제를 전달하도록 임명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회심 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은 사도행전 9:26-30에 기록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데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중 주께 돌아온 자들이 할례를 받아야할지를 의논하기 위해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진 때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회심과 첫 번째와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의 연대를 정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예루살렘 방문들을 바울의 갈라디아서에 보고된 방문들과 연관시키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신약 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의견이 갈리는 기본적인 문제는 이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5-20에서 바울은 자신의 회심과 두번의 예루살렘 방문, 한번은 회심 후 3년 뒤(1:18)의 방문, 그리고 다음은 그로부터 14년 후(2:1-10)의 방문에 대해 회상합니다. 모든 학자들은 회심 후 3년 뒤의 방문이 사도행전 9:26-30에 기록된 첫 번째 방문이라고 동의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1-10에 기록된 예루살렘 방문이 사도행전 11:30에 기록되어 있는 두 번째(흉년) 예루살렘 방문을 말하는 것인가, 이 경우 사도행전 15장의 세번째 방문은 갈라디아서에는 생략되었는가, 아니면 또다른 가능성으로 갈라디아서 2:1-10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방문을 말하는가, 이 경우 두 번째(흉년) 방문이 갈라디아서에서 생략된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으며 의견이 갈립니다. 이 두 가지 주장을 근거로 해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연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도표들과 같이 말입니다.

I

 

II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9:26-30

= 1:18

 

9:26-30

= 1:18

11:30

=2:1-10

 

11:30

=생략됨

15:1-29

=생략됨

 

15:1-20

=2:1-10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실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이 두 가지 방법들에 대해 각각의 주된 주장을 요약해 봅시다. 먼저 상기 "연대 재구성 I"의 주장:

1) 바울이 갈라디아서 1:15-24에서 자신의 활동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가 "복음을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라" (1:12)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가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방문한 것은 비밀리에 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으로서 이 방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원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바울이 "연대 재구성 II"이 말하는 데로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생략한 것은 갈라디아인들에게 그의 온전함과 권위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I 열"은 갈라디아서 2:1-10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동일시함으로 이 어려움을 피한다. "연대 재구성 I"에서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생략한 것은 아마도 갈라디아서를 쓸 때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갈라디아서 2:1-10은 한편으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사사로운 만남과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과 기둥같은 사도들과의 사사로운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서의 만남은 전체 교회 앞에 공개되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2:1-10은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도행전 11:30에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난 사사로운 만남을 가리키는 것 같다.

3) 갈라디아서 2:10에 언급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바울의 열정은 바울이 실제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전달한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도행전 11:30).

4) 만약 갈라디아서 2:1-10 = 사도행전 15:1-29이라면,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특히 그 결정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루는 할례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도 언급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5) 만약 갈라디아서 2:1-10 = 사도행전 15:1-29이라면, 예루살렘 공회가 베드로가 이방인 신자와 함께 먹다가 떠나 물러남으로 바울에게 책망받은 갈라디아서 2:11의 사건에 선행한다. 이 사건이 교회에서 이방인의 지위 문제가 예루살렘에서 해결된 후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있었을까?

6) 갈라디아서 1:6에 의하면, 그 편지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세운 뒤 "재빨리" 기록되었다. 이것은 만약 갈라디아서가 첫번째 선교 여행 직후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직전에 기록되었다면 이치에 잘 맞는다. 이는 갈라디아서가 바울의 첫 번째 편지가 되게 한다.

한편, 이제부터는 상기의 "연대 재구성 II"(갈라디아서 2:1-10 = 사도행전 15:1-29)에 있는 재구성에 찬성하는 주된 주장을 요약하겠습니다.

1) 갈라디아서 2:1-10에 있는 바울의 방문 목적은 사도행전 15:1-29에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둘다 이방인 신자에게 할례를 요구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갈라디아서 2:3-5; 사도행전 15:1, 5). 이 유사점은 명백하고 갈라디아서 2:1-10과 사도행전 11:30 사이에는 확고한 유사점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연대 재구성 II"가 "연대 재구성 I"보다 더 가능성이 높다.

2) 형태와 내용에 근거하면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와 비슷하다. 따라서 비슷한 시기--예루살렘 공회보다 훨씬 뒤의 어떤 시점–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갈라디아서에 있는 할례에 관한 그의 입장을 지지하니까 바울이 자신의 회상에 예루살렘 공회(갈라디아서 2:1-10)에 대한 언급을 확실히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3) 사도행전 11:30은 바나바의 이름을 바울보다 먼저 씀으로써 바나바를 팀의 지도자로 묘사한다(12:25, 13:1-2, 7 cf. 11:26). 그러나 갈라디아서 2:1-10에서의 방문을 설명하면서, 바울은 자신을 지도자로 본다. 사도행전은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15:2)을 포함해서 첫 번째 선교 여행 때(13:9, 13, 43, 46, 50)부터 바울을 지도자로 묘사하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1-10 = 사도행전 15:1-29 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4)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2:7-8에서 바울은 베드로와 동등한 지위의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만약 갈라디아서 2:1-10 = 사도행전 11:30이고 첫 번째 선교 여행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면, 무슨 근거로 "기둥 같이 여기는" 사도들이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바울의 권위를 인정하였겠는가? 사도행전 15:1-29이 사도행전에 있는 첫 번째 선교 여행 뒤에 일어난 것 같이 갈라디아서 2:1-10은 첫 번째 선교 여행 뒤에 일어났고 둘 다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대에 관한 이 모든 것의 의미는 "연대 재구성 I"에 의하면 바울의 회심은 사도행전 11:30의 흉년 방문 17년 전입니다 (cf. 갈라디아서 1:18 과 2:1). 그러나 "연대 재구성 II"에 의하면, 그의 회심은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예루살렘 공회 17년 전입니다.

이 두가지 가능한 연대를 도표로 만들기 전에, 확률적으로 높게 우리가 정할 수 있는 날짜를 하나 더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바울의 고린도 도착(사도행전 18:1).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사도행전 15:40-18:22), 바울과 실라는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수리아와 길리기아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통과하는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들은 드로아에 왔고 빌립보로 건너가고 해안을 따라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 갔습니다. 바울은 아덴으로 가고 사도행전 18:1에 고린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2로부터 우리는 바울이 그곳에 있는 동안 갈리오가 고린도의 총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처의 델파이에서 발견된 비문은 갈리오의 임기가 51년 중반에서 52년 중반이라고 알려줍니다. 사도행전 18:12-17에 기록된 사건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들의 새 총독이 바울에 불리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갈리오의 임기 초기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바울은 아마 52년 봄이나 가을 고린도를 떠났습니다. 사도행전 18:11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을 보냈는데, 이것은 아마도 50년 초나 49년 말에 고린도에 도착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도착 날짜는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최근에 로마에서 추방되었다고 말하는 사도행전 18:2로 확인됩니다. 5세기 역사가 오로시우스(VII, 6, 15)는 로마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글라우디오의 칙령 연대를 49년으로 잡습니다. 따라서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49년 말이나 50년 초 거의 함께 도착하였습니다. 18개월 머문 초기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썼습니다.

이제 두 개의 고정된 날짜가 확보됩니다. 하나는 사도행전 11:30에 나오는 흉년 방문으로 46년 혹은 47년이고, 하나는 사도행전 18:1에 나오는 바울의 고린도 도착으로 49년 말이나 50년 초입니다. 이 두 고정된 날짜를 토대로 다른 연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1:18과 2:1 사이의 시간 간격과 첫 번째 선교여행이 거의 1년간 지속되었으리라는 추정을 염두에 두면서, "재구성 I과 II"를 다음과 같이 도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어림잡아 근사치를 채택한 것이지 정확한 날짜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I

II

31년 또는 32년

바울의 회심
사도행전 9:3-19

32년 또는 33년

33년 또는 34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 9:26-30

34년 또는 35년

46년 또는 47년

흉년 방문
사도행전 11:30

46년 또는 47년

47-48년

첫 번째 선교 여행
사도행전 13:4-14:28

47-48년

48년

예루살렘 공회
사도행전 15:1-29

48년

49년 말
또는 50년 초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 도착 사도행전 18:1

49년 말
또는 50년 초

51년 가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남
사도행전 18:18

51년 가을

(여기서 계산은 일년의 일부를 일년으로 계산하는 고대 관습을 반영한다).

A .D. 50 에서 A .D. 70년 사이의 신약 사건들

사도행전 24-27은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의 사건들의 날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건을 설명합니다. 보르기오 베스도가 유대 총독으로 벨릭스를 대신합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4세기)가 제공하는 증거를 조심해서 분석하면 이것이 59년 여름에 일어났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 날짜에서 거꾸로 계산하면, 예루살렘에서 있은 바울의 체포(사도행전 21-33) 사건은 베스도가 오기 2년 전(사도행전 24-27)인 57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0:16에서 바울의 목표가 그 해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이고 오순절은 5월 말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바울의 체포는 아마 57년 늦봄이나 여름에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그 도시에 얼마 머물지 않아 체포되었습니다.

오순절 50일 전 유월절 축제를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교회와 더불어 보냈습니다(사도행전 20:6). 이 때는 57년 4월 7일-14일이었습니다. 다만 이후 그는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으로 계속 급히 갔습니다(사도행전 20:6-21:16). 유월절 빌립보 방문 전에, 바울은 그리스에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사도행전 20:3). 바울이 마게도냐를 통과하고(사도행전 20:3)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방문하는 시간을 할애하면, 이 3개월은 아마도 56-57년 겨울이었을 것입니다(cf. 고린도전서 16:6). 이 기간은 확실히 그리스의 주된 교회 고린도에서 보냈고 이 때 로마서를 썼습니다.

51년 가을 두 번째 선교 여행 도중 고린도를 떠난 때와 56년 겨울말 세 번째 선교 여행 도중 고린도에 도착한 때(사도행전 20:2) 사이에는,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5년간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3에서 이 기간 중 3년을 에베소에서 사역하였다고 합니다 (cf. 사도행전 19:1-20:1). 에베소에 머물기 전과 후에 있었던 여행에 소요되었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면, 그 기간은 52년이나 53년에서부터 55년 또는 56년 여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cf. 고린도전서 16:8). 에베소에 오래 머무는 동안,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그 후 56년 고린도로 가는 중에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그러면 우리 연대기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투옥된 후 59년 여름에 베스도가 도착한 때(사도행전 24:27)로 올라갑니다. 며칠 사이에 바울이 베스도 앞에서 재판 받았습니다(사도행전 25:1-12). 유대인 당국에 넘어가기 원하지 않아서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는데(사도행전 25:12), 이것은 바울이 곧 로마로 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의 설명에는 연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조금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해(사도행전 27:2)가 59년 여름이나 가을에 시작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죄수 바울이 그레데 섬에 있는 미항에 이르렀을 때(사도행전 27:8) "금식 하는 절기가 지났으므로" (사도행전 27:9) 항해하기에 날씨가 너무 위험하였다고 보고합니다. 한 고대 저자는 9월 중순에서 11월 중순에는 항해가 위험하고, 그 후에는 봄까지 항해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언급한 금식은 분명히 대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59년에는 그 날이 10월 5일 이었습니다. 따라서 미항을 떠난지 14일 후에 바울이 탄 배가 시실리 남쪽 몰타 해안에서 파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사도행전 27:27-44). 3개월 뒤 바울은 몰타에서 과동한 배를 타고 다시 로마로 항해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8:11). 바울은 곧 로마에 도착하여 그를 맞으러 나온 성도들의 환영을 받았읍니다(사도행전 28:15). 따라서 바울은 60년 초반에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서 살았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신약 성경은 바울의 재판 결과를 보고하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4세기의 한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전설에 의하면 자신을 변호한 뒤 사도 바울은 선교 사역을 위해 다시 보내졌다가 같은 도시로 두 번째 와서 네로치하에서 순교당하였다" (교회 역사 II, 22)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54-68년 동안 로마의 황제이었던 네로는 64년 7월의 대화재 후 로마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연대기 XV, 44). 많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 (예를 들면 클레멘트 1세)은 베드로와 바울이 이 잔인한 박해의 시기에 로마에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믿게 합니다. 그렇다면, 또한 유세비우스가 맞다면, 바울은 62년에서 64년까지 2년 동안 동방에서 자유롭게 목회하며 보냈습니다.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은 바울의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의 연대를 이 시기로 잡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64년 순교하기 조금 전 로마에서 쓴 마지막 편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바울이 로마로 후송된 지 3년만에 예루살렘에서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유대 당국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고대사 XX, 9, 197-203), 이 사건이 62년에 일어났습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교회 역사 III, 5, 3), 그뒤 오래지 않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 불운한 도시를 떠나서 요르단 동쪽 데가볼리의 도시중 하나인 펠라(Pella)에 정착하라고 경고하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66년에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에 전쟁이 났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쟁은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으로 끝났습니다 (cf. 마가복음 13:2; 누가복음 21:24).

이제 근사적으로 연대를 잡은 날짜로 주요 사건들의 연대표를 만들어 봄으로써 결과를 요약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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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예수님의 탄생 (마태복음 2:1)

B. C. 7년

예수님의 공적 사역 시작 (누가복음 3:23)

A. D. 27년

예수님의 죽음 (마가복음 15:37)

30년

오순절 (사도행전 2:1)

30년

바울의 회심 (사도행전 9:1-19)

32년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 9:26-30)

34년

사도 야고보의 죽음 (사도행전 12:2)

43년

바울의 2차 (흉년)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 11:30)

47년

바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 (사도행전 13:4-14:28)

47-48년

바울의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 공회) (사도행전 15:1-29)

48년

바울의 2차 (흉년)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 11:30)

50년 초

바울이 고린도를 떠남 (사도행전 18:18)

51년 가을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묾

52-55년

바울의 고린도에서 과동 (사도행전 20:3; 고린도전서 16:6)

56-57년

바울이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보냄 (사도행전 20:6)

57년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투옥됨 (사도행전 21:15)

57년 중반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옥에 있다가 로마로 보내짐 (사도행전 24:27, 27:2)

59년

바울이 로마에 도착 (사도행전 28:14)

60년 초

바울이 2년간 로마에서 거주함 (사도행전 28:30)

60-62년

바울의 동방에서의 마지막 사역?

62-64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62년

네로 황제 하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64년

예루살렘의 멸망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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