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물들을 배설물로 만드는 보배

설교하지 않은 원고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종종 상대방이 소중히 여기는 헛된 가치를 기준으로 겨루어 보고, 이에 이긴 다음에, 그러한 대결은 헛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11:21–12:11에서 바울은 자신의 “우월한” 업적을 자랑하고 나서,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고린도후서 12:11)라고 말합니다. 즉, 너희 기준으로 내 자신을 측정해볼 수 있고, 이길 수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 빌립보서 3장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개들(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삼가라고 교회에 경고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육체를 신뢰한다는 것”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 행위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2-3절, 9절 참고).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좋다. 너희가 육체를 신뢰하고 율법의 행위를 의지한다니 그럼 대결을 해 보자." 그리고 나서 자신의 육체의 행위를 열거하여, 그가 이룬 율법적인 성취로써 상대방을 링 밖으로 밀어냅니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 전체에서 최고의 구절들 중 세 구절이 나옵니다. 핵심은: 내가 지금 막 육체를 겨루어 승리한 것은 배설물 더미(헬라어 스쿠발라(skubala), 8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처럼 강한 단어(배설물!)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대안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비하면,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바리새인이 되는 것도 더러운 배설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모호합니다. 바울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단지 그리스도에 비하면 율법적인 성취가 배설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입니다. 도덕적, 종교적 성취보다 더 뛰어난 것은 1) 그리스도를 아는 것, 2) 그리스도를 얻는 것, 3)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 그리스도를 아는 것.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8절). 여기서 “아는 지식”이란 단지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주님”이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아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주의 최고의 주를(2:9-11 참조) 나의 주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바울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진 두 가지 측면의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분에 대한 이성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입니다. 바울의 생각과 마음은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다스리시며 완전히 보호하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그가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 위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얻는 것.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8절). “얻는다”는 것은 단지 이 땅에서뿐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미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1:23)이기 때문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1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2)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성취를 배설물로 여기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머지않아 (곧!) 그가 왕을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 이 땅에서 알았던 어떤 것보다 훨씬 완전하고, 친밀하고, 놀랍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성취는 이에 비해 배설물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된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9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즉,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에서—그의 모든 율법적 성취보다 한없이 더 좋은 의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압도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용납되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의로운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그런 의를 소유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주어진 의의 선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선물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바울이 귀하게 여기는 보배인 동시에 그 보배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분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얻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베들레헴 교회에서 얘기하는 함께 그리스도를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용납되는 기초이며 우리 마음이 갈망하는 것의 목적입니다. 그가 우리의 의이며 우리의 보상입니다. 그리스도(그를 아는 것, 그를 얻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에 비하면 나머지 모두는 배설물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를 귀중히 여기는

존 파이퍼 목사

©2014 Desiring God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Permissions: You are permitted and encouraged to reproduce and distribute this material in its entirety or in unaltered excerpts, as long as you do not charge a fee. For Internet posting, please use only unaltered excerpts (not the content in its entirety) and provide a hyperlink to this page. Any exceptions to the above must be approved by Desiring God.

Please include the following statement on any distributed copy: By John Piper. ©2014 Desiring God Foundation. Website: desiringGod.org